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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기장 가볼한 곳 해동용궁사
    국내여행 2018. 7. 17. 23:19

     

    딸아이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찾은 부산 기장의 해동 용궁사를 방문했다.

    바닷가를 끼고 위치해 있어서 자주 찾던 곳이었지만, 출산을 하며 육아를 하다보니 몇년만에 오게 되었다.

     

    용궁사의 입구에는 커다란 십이지신상이 세워져있다.

     

    해동용궁사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해보면 이러하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대체로 산중에 있는 곳들이 많은데, 해동 용궁사는 바닷물이 바로 아래에서 철썩이고 있는 곳에있는 수상법당 (水上法堂)이라고 할수 있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바닷가 외로운곳에서 상주하다가 용을 타고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은 주로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어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해동 용궁사가 관음신앙의 3대 성지를 이루고 있고 신앙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곳이다.

     

    동해의 최남단에 있는 해동용궁사는 1376년 공민왕때  왕사였던 나옹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있다. 나옹대사는 21살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상을 느끼고 공덕산 묘적암에 있는 요연선사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그뒤 충목왕대에 원나라로 건너가서 인도승려 지공의 지도를 받은후 공민왕7년인 1358년에 귀국하였다. 공민왕의 간곡한 청으로 신광사에 머무르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나옹대사가 경주 분황사에 머물고 있을때 꿈에서 동해용왕이 스님에게 절하며 울며말하기를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 할지다"라고 하였다.  그후 스님께서 이곳으로 와서 지세를 살피며 말하기를 "뒤는 산이요, 앞은 푸른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때 복을 받는 곳이다"라고 하시고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산이름을 봉래산, 절이름을 선문사라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의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에 통도사 운강화상이 보문사를 중창한 이후,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선문사를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더니 회항일 꿈에 백의관음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는 절이름을 해동 용궁사라고 바꾼후 지금에 이르렀다. 누구나 진심으로 기도하면 현몽을 받고 한가지 소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곳으로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참조: http://www.yongkungsa.or.kr/100/02.htm

     

     

    석조불상의 머리만이 놓여진 터널 입구로 들어간다.

     

    터널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바다를 바라보고 위치하고 있는 용궁사의 전경이 보인다.

    태풍의 영향으로 성난 바람과 강한 파도가 치고있었음에도 굉장히 많은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해동 용궁사를 보기위해 찾아왔다. 내 생각에도 기장하면 떠오르는 가볼만한 곳 첫번째가 해동용궁사인 것 같다.

     

    가파른 108 장수계단을 조심히 내려가야한다. 전망을 바라보느라 발을 헛딛게 되면 위험할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우리 딸아이의 내려가는  걸음걸음은 가볍다. 연신 주의를 주어서 조심히 걸어가게 했다. 계단을 다 내려가서 용문교에 이르르면 바다의 반대편 건물쪽에는 여러 석불입상과 승려상이 세워져있다.

     

    용문교의 아래편에 마련된 곳에는 석조불상이 새워져있었다. 굉장히 하드캐리한 동전던지기를 하고 소원을 빌수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꽤나 동전 던지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소원성취 연못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축대 위로는 대웅보전 건물이 위치해있다. 새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보인다. 1970년대 정암스님이 절을 창건한 이후 2007년 재신축한 건물이라고 한다.  

     

     

    대웅전 바로 정면에는 용두암 일명 미륵바위가 솟아있었으나 임란과 이후 6.25전쟁을 겪으면서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지금은 사진에서처럼 3층석탑이 그 자리에 조형되어 있는데, 이는 1990년 영호당 정암스님이 직접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만든 것이다. 지리산 화엄사의 4사자3층석탑과 유사한 형식인데, 당시 스리랑카 메스싼안다 스님이 가지고 온 사리7과가 봉안하여 사리탑이라 불리고 있다. 계단을 내려 오면서 바로 보게 되는 이 석탑은 넓은 바다 때문에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대웅보전의 모습이며, 안에서는 스님과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용궁사의 경내에는 지하약수터가 있는데 신비한 약수터로 약수를 마시고 좋은일이 많이 일어났다고하여 생방송 전국과 무한지대큐에도 보도된 바가 있다고 한다. 서출동류 암반수라고 한다.  신비의 약수터에 내려가기전 물을 불상위에 따르고 기도를 하고 내려가는데,  빨간색 전각이 일본 신사에서 자주 볼수있는 풍이다.

     

    도금불상에 물을 뿌리고 기도하고 지하로 내려가면 되는데,,,

     

    졸졸졸 약수를 떠서 한입마셔본다. 빨간색 전각은 일본풍의 느낌이 들어서, 한국의 사찰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다지 좋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용궁사의 대웅보전의 우측에 있는 금빛의 포대화상은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을 한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흔적을 남겨두었다. 중국 후량시대의 선승인 포대화상은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나왔는데, 항시 큰 자루를 둘러메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시주를 구하여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 한다.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대웅보전 좌측편의 거북이 모양의 목조각. 대웅보전의 문을 열때 고정시키는 고리같은데, 특이하게 거북이 모양으로 조각이 되어있어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대웅보전 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진신사리탑의 모습이다. 앞으로는 석등이 좌우로 놓여져있다.

     

    원통문을 지나서 뒤쪽 동래산으로 오르면 바다와 용궁사를 조망으로한 멋진 전망을 감상할수 있다.

     

    해수관음대불의 뒷편을 장식하고 있는 작은 고승들의 석상이다. 어딘지 일본의 사찰에 갔을때 볼수있는 풍경과도 닮은 모습인 것 같아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

    그리고 굉장한 크기의 해수관음대불의 모습이다. 연화대좌사이에 사천왕상과 금강역사상이 새겨진 기단 위에 해수관음대불입상이 위엄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있는 모습이다. 불경에서는 관제음보살은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게 33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나투는데,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부르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단일석재로는 한국최대라고 하는데, 글쎄,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대불보다 커보이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용궁사 방문을 끝내고 처음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겪은, 용궁사에 대한 나의 소감을 짧게나마 적어본다면, 해동용궁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절의 여러 시설들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서 건물을 지었던 우리 전통 건축의 기법들과는 동떨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소 싸구려틱하게 보이는 황금빛 페인트칠을 한 조형물과 일본색이 짙었던 전각과 소품들, 작은 석불등.... 과하게 절을 치장하는데 힘을 쏟는 나머지 바다와산이라는 멋들어진 배경에 형형색색의 부조화스런 물감들로 마구잡이로 칠을 해버리고만 그림처럼되어버렸다는 생각이다. 외형적으로 돈을 들여 사찰을 치장하기보다는 오랜 기도의 도량으로서 신도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부처님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의 의미를 지긋이 깨닫게 해주는 곳으로 사찰이 운영되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 부산 기장의 해동용궁사에대한 포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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